댐정보

한국의댐

안동다목적댐

낙동강 유역의 수자원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안동 다목적댐은 높이 83m, 길이 612m, 체적 4,014천㎥, 저수용량 12억4천8백만㎥의 중앙차수벽형 사력댐으로 시설용량 9만㎾의 국내최초 양수겸용 발전소를 갖추고 있다. 이 댐은 낙동강 하구로부터 약 340㎞상류에 위치하며, 안동시 동북방 4㎞ 지점인 안동군 와룡면과 안동시 성곡동을 연결하여 낙동강의 본류를 가로막고 있는데, 본댐으로부터 3㎞하류에 높이 20m, 길이 218m에 이르고 수문식 역조정지가 설치되어 있다. 낙동강은 우리나라의 동남부를 관류하는 유로연장 512㎞, 유역면적 23,326㎢의 대하천으로 유역군내에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와 김해평야를 비롯한 곡창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연례적인 홍수피해와 용수 부족현상으로 유역 상류에 대용량의 댐 건설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안동댐은 1971년 4월에 착공하여, 5년 6개월만인 1977년 5월에 본댐을 준공하고 특히 본 댐은 심벽재료를 종래의 점토 대신 화강토로 대체 사용하는 새로운 댐 축조공법을 개발하여 전공사의 비용 절감 및 공기단축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안동댐은 하류지역의 44,000ha에 달하는 농지에 연간 3억㎥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부산 . 대구 등 대도시와 마산·구미등 공업단지에 연간 4억 5천만㎥의 생.공용수를 공급하여 식량증산과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또한 연간 1억5천 8백만㎾h(양수발전량 포함)의 전기를 생산하여 첨두부하시 전력난을 해소하는 등 국가경제발전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
하천명 섬강
위치 댐지점 경북 안동시 호반로 46
유역면적 209㎢
총사업비 404억원
연평균강우량 1,469㎜
사업기간 1990 ∼ 2000
본댐
형식 사력
길이 612m
높이 EL. 83m
체적 4,014천㎥
마루표고 EL. 166.00M
여수로
계획방류량 4,500(㎥/sec)
문비 4문(14m×9.7m)
발전소
위치 댐우안 직하부
형식 양수겸용
수차발전기 DERIAZ 사류형
시설용량 45천㎾× 2대
정격낙차 57m
저수지
계획홍수위 EL.162.50m
상시만수위 EL.160.00m
홍수기제한수위 -
총저수용량 1,248백만㎥
유효저수용량 1,000백만㎥
저수면적 51.5㎢
홍수조절용량 110백만㎥
조정지댐
형식 콘크리트 중력식
높이 20m
길이 218m
유효저수량 3백만㎥
유역개황

낙동강 유역의 최북단에 위치한 안동댐 지역은 유역면적이 1584㎢로서 낙동강 유역 전체 면적의 6.6%를 점유하며 강원도 삼척군 황지읍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태백시와 봉화군, 안동군을 거쳐 남류하다가 안동시로부터 4.5㎞ 북동쪽에 위치한 안동댐에 이른다. 동쪽으로는 태백산맥에 의해 분수령이 형성된 동해안 유역과 인접하고 북서쪽으로는 한강유역, 남동쪽으로는 임하댐 유역과 맞대고 있는 본유역은 남북으로 72㎞, 동서로 43㎞의 장방형으로서 유역의 고도는 해발 90m에서 1,450m까지 분포되어 있고 평균 고도는 해발 389m이다.
댐지역에서의 하상고는 해발 94m이며 댐하류 4㎞지점에서 낙동강 제1지류인 반변천과 합류한다. 15% 이하의 느린 경사지가 전체면적의 2%에 불과한 산악지형으로서 전유역의 70%가 화성암이며 , 잔여 30%는 수성암으로 덮혀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1,075㎜이고 연평균 유입량은 950백만㎥이다. 댐하류 3㎞ 지점에 역조정지댐이 위치하고 있다. 댐 유역내 행정구역은 2도 2시 3군 12면 이다.

건설배경

안동다목적댐 지점조사는 1961년에 처음 실시되었으나 그 당시만 해도 수자원 개발방향이 수력 전기 단일 목적이었으므로 그 계획규모가 미미하였다. 날로 성장하는 사회적, 경제적 여건 변동에 따라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토지 및 수자원 개발이 요구되므로 1966년에 안동다목적댐 기본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낙동강유역 기본조사까지 병행하게 되었다.
급증하는 용수수요 증가로 인한 물부족량을 충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 각종조사를 실시하여 몇 개의 댐지점을 선정하고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우선 댐으로 안동다목적댐 건설이 건의되었다. 안동다목적댐 건설사업은 A.D.B 차관사업으로 내자 32,659백만원, 외자 17,150천US$의 건설사업비를 들여 1971. 4. 1에 낙동강 유역의 풍요로운 번영을 약속하는 첫삽을 든지 만 5년6개월 만인 1976.10.28.에 준공을 보았다.

수력발전소

1976년 10월 1일에 발전을 개시한 국내 최초의 양수겸용 발전소로서 시설용량 9만 ㎾(4만5천㎾×2대)이다. 여기서 생산된 연간 1억5천8백만㎾h의 전력은 주로 영남지역에 공급되며, 이 지역의 산업발전과 전력계통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안동 수력발전소는 동일한 수차로 발전과 양수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양수겸용 발전소이다.

효과
  • 용수효과 : 안동다목적댐의 연간 용수공급량은 926백만㎥로서 그 중 450백만㎥가 생 공용수로 사용되며 부 산을 비롯하여 동해 남부지방의 포항, 울산지역과 남해동부의 창원, 마산, 진해 등의 주요 산업도 시의 생 공용수 공급원으로서 절대적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이는 낙동강 본류에 직접 취수시설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연간 약 1,495.7백만원의 송수관의 건설비 부담액 경감 효과가 있으며 댐 하류 약 44,000ha의 몽리면적에 300백만㎥의 관개용수와 176백만㎥의 하천 유지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 홍수조절편익 : 우리나라의 강우 특성상 연평균 강우량의 2/3가 6월에서부터 9월까지 집중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매년 입었다. 댐건설 이전 낙동강 유역의 홍수 피해액은 1916∼1971년간 의 연평균 약 6,307백만원(1975.6. 기준)이나 되고 그 피해액 중 농산물의 피해가 46.4%를 차지하였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댐하류 지역의 연간 110,000천㎥에 해당하는 홍수량을 조절하여 낙동강 유역 주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 발전편익 : 안동 수력발전소는 유하식 및 양수식을 겸비한 국내 최초의 양수겸용 수력발전소로서 비첨두 부하시 잉여전력을 이용, 1차 발전 사용수량을 양수하여 첨두부하시에 발전을 함으로써 그 효용 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시설용량 90천kw의 발전시설을 보유하고 연간 유하발전량 89Gwh의 전력을 생산하여 21.1백만l에 해당하는 벙커C유 대체 효과를 가져왔으며 생산된 전력은 경북 북부지방에 공급하고 있다.
  • 간접효과 : 댐을 축조하여 51.5㎢의 인공호수가 형성됨으로 인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국민관광지 및 휴양지를 제공하게 되고 내수면 어업개발, 유람선운항 등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연혁
1962. 10 낙동강 유역 조사 실시
1967. 4 실시 설계 발주(도화 기술단)
1971. 4. 1 진입 도로 공사 착공
1971. 12 타당성 조사 완료
1973. 3. 1 가배수 터널 공사 착공
1973. 7. 20 여수로 및 발전소 공사 착공
1973. 9. 26 가물막이 공사 착공
1974. 6. 30 가물막이 축조 공사 완공
1974. 9. 25 본댐 축조 공사 개시
1975. 12. 4 담수 개시
1976. 6. 5 관개 용수 방류 개시
1976. 8. 30 본댐, 여수로, 발전소 등 공사 준공
1976. 10. 1 상업발전 개시
1976. 10. 28 준공식
1977. 5 사업준공
설계 및 시공의 특징
  • 양수 발전
    안동 수력발전소는 유하식 및 양수식을 겸비한 국내 최초의 양수겸용 수력발전소이다. 안동댐 은 건설 당시만 해도 하류용수 수요에 맞추어 가급적 물의 부족시에만 방류하여야 하는 제한된 방식으로, 낙동강 유역의 수요공급균형을 다른댐이 생길 때까지 안동댐 하나만으로 조절하여야 하는 전제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어느달에는 방류가 필요없게도 된다.
    따라서 자연 유하량만으로 연중 발전이 불가능하여 방류가 적은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하류에 작은 저수지(역조정지)를 두어 첨두부하시(주로 17:00∼22:00)에 발전을 하였다가 전력수요가 적은 심야에 잉여전력으로 하류저수지에서 양수하여 다시 발전하는 양수발전을 함으로써 불규칙한 방류로 인한 발전계획상의 문제점을 해소하여 전력 계통이 요구하는 지속적인 보장출력을 증가시키는 한편 댐 하류 지역의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위 하여 양수 겸용 수력발전소로 설계하였다.